티스토리 뷰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는(Oscar-Claude Monet) 인상주의 운동의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빛, 색, 그리고 덧없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그의 숙련된 솜씨로, 모네의 예술은 계속해서 전 세계의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인상주의의 본질과 모네의 삶, 예술적 스타일, 그가 사랑한 수련에 대해 알아보자.
[오랑주리 미술관]
-. 전시 기간 : 상시
-. 전시 장소 : 오랑주리 미술관 (파리, 프랑스)
-. 관람 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화요일 휴관
-. 입장권 : 기본 9유로 / 유로패스 소지자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www.musee-orangerie.fr
1. 빛의 마술사 : 클로드 모네의 생애
19세기 현대 미술의 사조인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창시자 모네는 프랑스의 유명환 화가이다. 파리에서 태어나, 르아브르에서 청소년 시절을 지냈고, 미술 아카데미 입학을 위해 다시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그의 영감의 고향인 지베르니에서 생을 마감했다. 붓터치가 많이 소요되는 후기 화풍과 달리 그의 시작은 캐리커처였다. 어릴 적부터 드로잉 실력이 뛰어난 어린 모네는 짧은 시간에 인물의 특징을 포착해 그림에 담아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어린 소년 모네의 능력을 발견한 프랑스의 풍경화가 "외젠 부댕(Eugene Boudin)"은 여러 차례 설득하여 그에게 외광 회화를 추천했다. 모네의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야외에서'그림작업을 하는 것이다. 당시 튜브형 물감이 발명되는 시기이기에, 화가들은 이제는 실내 스튜디오뿐만 아닌 실외에서의 활동이 가능해진 시기이다. 하지만 대부분 밑그림만 실외에서 잡고, 실내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다른 화가와는 모네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밖에서 작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네는 빛의 변화에 따라 풍경의 색감과, 눈으로 보이는 다른 풍경에 주목하였고 이때부터 그는 평생을 받친 '빛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모네의 그림은 같은 장소 다른 시간대를 그린 연작을 많이 살펴볼 수 있다.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의 색감과 그림자 수없이 그리며 같은 장소,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획기적인 기획이었고 그 당시의 화랑에서는 도전적인 화풍이었다. 그가 그린 연작 <빛의 더미> <루앙 대성당> <런던 템즈강>은 평단의 인정을 받아 그를 가난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작품을 팔아 번돈으로 노후에 지베르니의 정원에 정착할 수 있었다.
2. 19세기 인상주의의 개척자이자 완성자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진행된 미술 운동으로, 주로 색채와 빛의 표현에 중점을 두는 예술적 스타일이다. 19세기 살롱(Salon)의 주요 '정통' 화파의 화풍은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본질을 그리는 것이 아닌 인상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었기에 당시의 평론가들에게 '실력 없는 화가'라는 조롱을 받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주로 밖에서 작업했으며, 자연의 날씨, 사람들의 행동 등을 빛과 색채로 표현하였다. 인상파 화가들은 색채를 직접 혼합하여 고유 색상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선호했으며, 빛의 반사와 굴절을 그림의 주요 요소로 삼아 작업하였습니다. 인상주의는 초기에는 비난과 놀림을 받았으나, 이후 그들은 현대미술의 개척자이자 완성자로 인정받게 된다.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카미유 프사다( Camille Pissaro) 등이 있다.
3. 인상주의의 대부: 모네(Monet)와 마네(Manet)
모네(Claude Monet)와 마네(Edouard Manet)는 모두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둘 다 19세기 후반의 유럽 회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이 둘은 비슷한 이름 철자 때문에 모네(Monet)와 마네(Manet)를 많이들 헷갈렸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닌 당시의 프랑스 사람들도 두 사람의 작품을 굉장히 헷갈렸다고 한다. 둘의 공통점은 전통적인 미술 화풍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 당시 살롱(Salon)의 이단아라고 불렸다고 한다. 비슷하게 들리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모네와 마네는 각각 그들의 독특한 스타일과 예술적인 비전을 가진 뚜렷한 인물들이었다. 두 사람의 그림의 차이점은 색감과 대상을 통해 알 수 있다. 모네는 자연의 빛과 색채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에 꽃과 물, 자연 등을 주로 다루었으며, 파란색 계통을 색감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마네는 인물과 일상생활을 주로 화폭에 담았으며 옷과 정장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 계통의 색상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마네의 그림은 선명한 대비, 단순화된 형태, 그리고 고전 예술의 이상화된 묘사로부터의 이탈로 특징지어지는 대담하고 직접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모네와 마네의 예술적 특징은 서로 다르나, 이 예술가들이 예술 세계에 끼친 깊은 영향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모네의 매혹적인 풍경과 순간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그의 능력은 계속해서 경외심과 감사를 불러일으키지만, 마네의 대담한 현대 주제 탐구는 현상 유지에 도전하고 예술적 경계를 밀어붙였습니다. 위대한 두 화가의 작품은 지금도 프랑스 곳곳의 미술관에 보관되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4. 물의 정원 지베르니(Giverny)와 오랑주리의 <수련> 연작
지베르니(Giverny)는 파리에서 약 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약 500여 명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중년의 모네는 기차를 타고 창밖 속 마을에 반해 인생의 후반기를 이 시골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모네는 남다른 애정으로 정원을 만들어 꽃을 심고, 연못을 만들어 그의 정원에서 꽃이 피고 지는 모든 과정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정원 부지는 조금씩 넓혀가며, 현재까지의 규모는 9,900㎡ (약 3,000평)이라고 한다. 모네는 이 거대한 정원에서 30년간 약 250여 점의 수련 연작을 그려왔다. 또, 일본 문화에 매료당한 모네는 정원 속 일본식 다리를 연못 중앙에 설치하기도 했다. 모네의 노년은 더욱 <수련>에 몰두하게 되었다. 70살이 넘은 그는 심각한 백내장을 앓게 되며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으나, 그는 자기 일생을 건 초대형 벽화로 <수련>을 그리기를 결심했다. 그의 반평생 그려온 수련의 색채와 형태를 기억하며 약 8년간 집념으로 작품을 만들어, 오늘날의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이라는 명작이 탄생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수련>은 높이 2m 총길이 1,000m로 유화로서는 엄청난 크기의 작품이다. 모네는 1차 세계대전 직후 평화를 기리기 위해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였고, 프랑스 정부는 예전 프랑스 왕실의 온실이었던 오랑주리 미술관을 재설계하여 그의 작품만을 전시해 두었다. 그의 요청 사항대로 타원형으로 설계된 전시실과 자연광이 들어오는 흰 벽에 걸어 둔 덕분에 여러 가지 다른 각도에서 빛을 받은 수련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은 나무의 그림자, 구름, 버드나무 두 그루, 맑은 아침, 일몰 속 등 여러 시간대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감상할 수 있다. '순간의 인상을 담는다'의 모네의 철학이 담긴 세계적인 명작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의 찬사를 받는다.
[지베르니 가는 법]
(1) 기차 : 파리 Gare de Paris-Saint-Lazare 역에서 Vernon-Giverny역으로 이동 (약 30유로)
(2) 버스 : 모네의 집까지 셔틀버스로 이동 (약 10유로)